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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별이 지다

기사승인 2018.11.04  18: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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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맨발의 청춘’ 한국의 국민배우 신성일 선생이 영면했다. 한국 영화배우 중 가장 많은 여성팬을 가지고 있던 신성일. 그 처럼 많은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배우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화려한 은막의 생활에 반해 고초도 큰 인생 역정이었다.

부인 엄앵란씨 와의 불화를 예견하고도 솔직히 연애담을 토로했던 신성일은 자유인이었다. 위선을 생각하지 않는 경상도 머슴아였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들의 실명을 공개한 솔직함으로 만년의 생활이 불행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고향 영천 산골에서 마지막 자연인으로 살려고 했던 신성일은 건강하고 멋진 모습으로 인생 이모작을 사는 은퇴자들에게는 우상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 관계로 곧은 신체에 복부비만도 없었다. 백발이라도 신체적 나이는 젊은이 같았다.

필자는 서울의 한 옥션 경매장 파티에서 신성일을 만났다.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그가 나이가 들어 고미술품을 애호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소장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가 출현했던 다큐멘타리를 보는 순간 그의 방이 영상에 비쳐졌다. 벽에는 산수화가 걸려 있었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서예 액자가 눈에 띄었다. ‘세상사는 오직 마음에 달렸다’는 화엄경의 한 구절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

부모님 사진을 모신 방안에는 여러 가지 불상이 보였다. 그 중 하나는 반가사유상이었다. 불상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불교미술품에도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방안에 부모님의 향을 피운 것을 보면 신성일은 불교에 심취했던 것 같았다. 인생의 허무를 알고 관조하며 살았던 것인가.

그는 영화를 누구도 보다도 사랑한 진정한 배우였다. 다작시대 겹치기 출연을 하여 기념비가 될 만한 작품을 떠 울리기가 어렵지만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같은 흥행작은 기억 될 만한 작품들이다. 그가 이제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신문은 애도했다.

부인 엄앵란씨는 남편을 보내면서 그가 저승에서 순두부 같은 여자를 만나 여러 곳을 놀러 다녔으면 한다고 했다. 순두부 같은 여인은 어떤 여인일까. 순하고 착하며 둥글둥글한 심성을 가진 여인일까. 엄앵란은 남편이 살아있을 때 순두부 같은 아내 역을 못해 준 것을 후회한 것일까. 그녀는 남편이라는 호칭보다는 평생 동지를 잃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영원히 같이 사는 부부는 없다. 인간은 결국 혼자 떠나는 것이다. 가장 화려하게 살았던 은막의 주인공도, 보잘 것 없고 잡초 같은 인생도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신성일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내년에는 정말 좋은 작품을 가지고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가겠다고 한 것이 유언이 됐다. 이제 별들의 고향에서 한국영화계의 발전을 지키는 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재준 limlee9@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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