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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자살

기사승인 2018.12.09  19: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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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초한지의 영웅 항우(項羽)가 해하전(垓河戰)에서 패하자 모든 것은 절망적이었다. 항우가 오강을 건너려 할 때 옆에는 정인(情人) 우미인이 따랐다. 항우는 술을 마시며 우미인을 걱정하는 시를 짓는다. 그것이 유명한 ‘역발산기개세’다.

힘은 산을 뽑고 기상은 세상을 덮었다는데(力拔山兮氣蓋世) / 때가 불리하니 추(騅. 애마)마저 가지 않누나 (時不利兮騅不逝) / 추마저 가지 않으니 난들 어찌하리(騅不逝兮可奈何) / 우(虞)야, 우야 너를 어찌하리.(虞兮虞兮奈若何)

항우는 우미인에게 ‘너는 얼굴이 아름다우니 잘만 하면 패공의 사랑을 받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항우는 땅에다 창을 꽂고 말을 달려 그 앞으로 몸을 던졌다. 항우의 자살을 지켜보고 있던 우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우는 용장이었으나 이렇게 허무하게 자살함으로써 영영 천하를 잃은 비겁자가 되었다. 삼국지의 주인공 조조나 유비의 지혜가 있었으면 자살은 피했을 게다.

장군의 죽음에는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다르다. 백제 멸망시기 황산벌에서 5천결사대를 이끌고 전사한 장군 계백은 호국의 화신으로 추앙받지 않은가.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이 포로로 잡혀 구차한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아 전쟁에 나갈 때 모두 살해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충남 연산군에는 계백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그 넋을 기린다.

임진전쟁 때 탄금대에서 죽은 장군 신입. 신장군은 달천평야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패퇴하여 탄금대로 올라가 강물에 투신했다. 후세 사학자들은 장군의 자살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더라면 장군의 죽음은 더 높게 평가 되었을 게다.

성웅으로까지 숭앙되고 있는 이순신장군은 마지막 순간까지 왜적을 섬멸하다 흉탄에 맞아 전사했다. 조선 수군의 패전으로 전선 12척만을 가지고 2백 척 가까운 일본전선을 깨뜨렸다. 세계 해전사에 남는 대승을 거둔 장군, 이순신을 적국인 일본도 숭앙을 한다. 장군이 마지막 가는 길은 이것이 최고의 영예다.

충주출신으로 병자호란당시 끝까지 청에 항전하다 비명에 간 임경업장군은 진정한 군인이었다. 기울어져 가는 명(明)을 일으키려 세우려 부단히 애를 썼으나 포로로 잡힌 아내마저 자살하고 가정은 풍비박산했다. 그래도 신념을 잃지 않고 저항하다 옥중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진정한 군인이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받던 한 장군이 목숨을 끊었다. 억울하다는 유서에는 자신이 모두 짊어지고 갈 테니 부하들을 선처해 달라는 것이었다. 평생 직업군인으로 보안 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장군은 군내부에서 존경을 받았던 군인이었다고 한다.

적폐청산이란 미명으로 표적수사나 강압수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피의자들이 쉽게 목숨을 버리는 행위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은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평생 정직하게 살았으며 후배군인들의 귀감이었다는 한 장군의 비극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착잡하다. 국론분열과 경제문제 등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차제에 국민 통합을 위한 결단이 절실하다.

이재준 limlee9@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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