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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교원 생산 절실하다

기사승인 2019.09.22  18: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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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선생님 뭐하세요?” “왜? 깜짝 놀랐잖아…” 요즘, 교육현장을 풍자한 질문과 대답이다. 선생님 존경은커녕 기운 빠진 교육현장·고독한 교권의 현실, 버겁고 냉혹하다. 부끄러운 비윤리적 상황이 사제(師弟) 질서를 흔든 게 원인이다. 퇴직 후 다시 교원 신분인 필자의 뒤통수가 따갑다. 충북 모 중학교 선생님·학생 성관계, 다리몽둥이 부러질 사건으로 교육·경찰·법조계는 물론 일반 검색어까지 뜨거웠다. 짝퉁교원이 사도(師道)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얼굴조차 들 수 없다. 교육자 수난시대다.

‘형법상 미성년자 강간죄(13세 미만)가 아니며 강압적 성관계와 무관하다’는 경찰의 ‘혐의 없음’ 처리에 또 불편한 심기다. 벌칙 조항 밖이란 부제가 붙었다. 도교육청은 자체징계수위 의결 등 조기수습을 마친 것으로 밝혀졌다. “사랑한 사이인데 무슨 문제냐?” 철부지 같은 반문들, 생각이 어리고 덜 자라서일까. 생각할수록 ‘교원자격증’ ‘임용고시’ 조차 민망하잖은가.

태성·습관은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인간애’를 모르는 정신 나간 사람이 직업 안정을 찾으려 교단에 오르니 교육 매뉴얼 보다 엉뚱한 맛에 빠진다. 최근 발생한 성관련 사건사고를 보면 전혀 ‘가르치는 사람’의 일탈 정도가 아니다. 되레 뻔뻔스러운 게 더 문제다. 파격적인 자숙을 외면하면 언제 어떤 파멸이 다시 고개 들지 조마조마하다. 학교장 혹은 일부 교직원·학부모와 학생들의 독자적인 자구 행보만으로 어렵다. 교원 성범죄에 대한 법령 개정 및 영구 퇴출 등, 법이 물러서가 아니다. 전통·법규적으로 교직은 이런저런 윤리를 요구 받는다. 때로는 불편하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숭고한 ‘사도(師道)’, 그 온기로 사명을 근사하게 달군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만 더 멀리’의 확연한 구분이 의식 속에 자리 잡지 못한 채 교단을 오르니 ‘백년대계’를 다그치면서 예삿일로 보기 어렵다.

지난 학기말, 교육 실습을 다녀 온 교직과목 이수중인 예비교사들에게 호된 매를 맞았다. 학교현장 변화 1순위로 자유분방함을 꼽았으나 정작, 수업 중 리액션은커녕 학급당 불과 두 서넛 학생만 능동 참여일 뿐 멍하단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전문직 운운’ 과 함께 학부모 민원을 탓할 셈인가. 끊임없는 연구와 성찰 신호다. 사표(師表)야 말로 가르침의 무기이다.

◇ 선생님은 제2의 부모인데

농부 발자국 횟수만큼 열매를 채우는 곡식처럼 아이들은 선생님 손길에 따라 자랄 수도 멈추기도 한다. 제2의 부모라고 하지만 글쎄다. 육아휴직 3년 후, 교단을 다시 찾은 후배가 짧은 기간 동안 고속 현장 변화를 "인내의 끝자락까지 묻어난다”며 힘들어했다. 문제 발생 전 예방이 먼저다. 현실은 곧잘 지체와 부진 전부를 아이들 탓으로 돌린 채 교원자신의 헛발질을 모른다. 흔들고 무너뜨린 교권의 실체, 무늬만 포장하거나 대충 넘겨선 안 된다. 이번만큼은 현실을 허심탄회 논의(전·현직교원, 학부모, 교육관련 단체 등)하면서 교육 불신의 틀이 사라질 수 있는 신뢰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 벼랑 끝 '우량교원‘ 생산이 절실하다.

오병익 obinge@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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