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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경자 수필가 | ||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때다. 이즈음 남녘에서는 꽃소식이 한창 들려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 마음을 품고 새봄을 맞이하기 위해 섬 여행을 떠났다. 출발 전 밤잠을 설치는 것을 보면 여행은 나를 늘 들뜨게 한다
장생포항에서 여행객을 실은 유람선은 20여 분 동안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 동백꽃 명소인 지심도에 착륙했다. 섬 땅에 발을 디디자 선상에서 먼빛으로 보이던 우람한 바위가 바로 눈앞에 우뚝 서 있다. 바위 위에 우아하게 앉아있는 인어공주가 환한 눈빛으로 반겨주는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그곳을 배경으로 찰칵 인증사진을 한 후에 비탈길로 발길을 돌렸다.
오솔길 옆으로 서 있는 동백나무 가지마다 빨갛게 핀 꽃을 보고 아주 적기에 잘 왔다고 지인과 담소를 나누었다. 길 양옆으로는 빽빽하고 우람하게 자란 키 큰 동백나무가 마치 이 섬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늠름하게 보였다. 길바닥은 미끄럼방지용 마대를 깔아놓아 걷기에 아주 좋았다. 동백나무 가지의 푸른 잎 사이로 동백꽃이 피어 장관을 이뤄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붉은 동백꽃이 활짝 핀 것과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가 층층으로 조화를 이루며 피어날 준비를 하는 듯했다. 고개를 돌려가며 아름답게 핀 꽃 감상을 하는 내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전국 각처에 동백꽃 명소가 많고 많겠지만 이곳 동백 숲은 원시 상태로 가장 잘 보존되어온 곳이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갔다.
동백나무 아래에는 짙붉은 동백꽃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보니 마치 동화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백의 붉은 꽃이 연속으로 피었다가 미련 없이 꽃송이 채 떨어지는 것이 목련꽃과 비슷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한 생을 살다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오솔길 따라 걷다 보니 나무 사이로 보일까 말까 내려다보이는 너른 바다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시원하게 펼쳐진 저 너른 푸른 바다의 빛에 눈이 부셔 실눈을 뜨고 황홀경에 빠져본다. 저 푸르디푸른 바닷물에 하얀 천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푸른빛으로 물 들것 같은 고운 빛깔이다. 이 순간 자연이 빚어낸 바다 빛을 보노라니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마른 나뭇가지 끝에 떨어진 동백꽃을 꽂아놓아 마치 꽃이 피어난 것 같이 장식해 놓아 눈길을 끌게 했다. 사그라지는 가지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처럼 보기 좋았다.
동백나무 숲속에는 아이비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식물들이 마치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얼핏 보아도 모든 식물의 푸른 잎에 윤활유를 칠해 놓은 듯 윤기가 자르르 흘러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청정지역인 이곳 식물은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기 때문인 모양이다. 오염되지 않은 이곳 환경이 너무 부러울 뿐이다.
이 섬의 대표 새라 하는 동박새는 동백꽃 꿀을 유난히 좋아한다고 한다. 동박새 소리가 난들 어찌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 소리가 궁금해졌다. 귀를 쫑긋해 보았지만 낯선 동박새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간혹 까마귀 소리만 들릴 뿐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동백하우스' 앞을 지날 때 길 가운데 흰 꽃을 피운 동백나무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흰 동백은 처음 보는 이색적인 꽃이라 신기했다. 누군가 떨어진 붉은 동백꽃으로 흰 동백꽃 나무 밑에 하트 모양으로 예쁘게 장식해 놓은 것을 보니 참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오솔길 옆 민박집 주변에 봄이 와 있었다. 따뜻한 돌담 밑에서 푸르고 싱싱하게 쑥 올라온 이름 모를 꽃대 모습을 발견했다. 그 옆으로 수선화도 뒤질세라 옹기종기 싱그럽게 피어올라 샛노란 꽃을 피워 냈다. 어쩌면 저리도 고운 색깔로 아름답게 피어났을까. 이곳저곳을 살피니 산기슭에는 만개 滿 開 한 매화꽃이 바람에 휘날렸다. 마치 꽃비가 내리는 것처럼 꽃잎이 내 얼굴에 살짝 내려앉아 마음을 황홀하게 했다. 이곳에서 봄의 전령사인 매화꽃이 즐거움을 선사해 주어 너무 좋았다. 남쪽 바다 위에 자리한 이 섬은 그야말로 천혜의 보고를 간직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에 젖어 숲길을 얼마쯤 지나고 나니 해맞이 전망대이자 활주로가 나왔다. 그곳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햇빛에 반짝이는 동백꽃의 속살거림에 내 마음도 한 자락 얹어보았다. 동백꽃 향기로 온 가슴을 가득 채우고 나니 짓눌렸던 기분도 홀가분해지는 듯했다. 풍성한 봄을 한 아름 안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리운 이들을 떠올려 본다.
임경자 kja934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