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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영인본도 가질 수 없는 나라

기사승인 2020.01.16  17: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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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리스트

지난 해 12월 특강 차 청주에 내려가는 길에 직지 고인쇄 박물관을 찾았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直指) 영인본을 구해 볼 참이었다. 그러나 박물관 입구 서적을 판매하는 코너로 갔더니 영인본이 한 권도 없었다. 직원에게 문의해 보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프랑스 정부가 저작권을 이유로 일체의 영인본도 판매하지 말라고 통보해 왔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아니 한국에서 불법으로 훔쳐 간 문화재를 가지고 자신들의 저작인양 권리를 내세운다고?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이런 문제를 프랑스 정부에 한번이라도 항의 한 적이 있습니까?’

‘우린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사실 흥덕사지에 만들어진 직지 고인쇄박물관은 정작 있어야 할 유물이 빠진 공허한 곳이다. 전시 된 직지는 영인본이다. 그동안 청주시가 현상금 까지 내걸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 된 직지 동일 본을 찾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도 직지를 찾으려 고서점을 돌아다닌다는 집념의 수집가들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박물관이 여러 해 동안 직지를 찍는 데 사용했던 고려시대 금속활자를 재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박물관에 들었을 때 어린이들이 복원된 직지 활자판에서 체험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것도 프랑스에서 금한다고 했다.

고려 금속활자의 재현은 지난 2008년 작고한 활자장 오국진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선생과 필자는 오랜 지면이 있었으며 함께 청주인근의 절터도 답사 한적이 있다.

그는 서예가이자 전각가로 도청에서 특별직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금속활자의 복원에 온갖 힘을 쏟은 바 있다. 직지 금속활자를 복원하면서 여러 번 필자를 초대하여 열정을 보였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건강이 나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오선생의 대를 이어 현재는 금속활자장인 임인호씨가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 임씨는 옛 밀랍 주조법을 재현한 오선생으로 부터 배운 기술을 그대로 적용, 고려 말기 사용했던 방법 그대로 금속활자를 복원하고 있다.

최근 문화재청과 국립프랑스도서관이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에 대한 서지학 연구를 본격 시작한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기회를 직지심경의 학술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재 인정받을 계기로 보고 있다.

직지에 대한 서지학 연구 활성화는 만시지탄감이 없지 않다. 직지를 주제로 한 공예비엔날레가 시작된 지 올해로써 19년이나 된다. 이제 서지학적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직지 고인쇄 박물관의 소장품도 예산 등 문제로 한국의 고 인쇄 문화를 한눈에 조망하기가 부족하다. 고려시대 불경 목판본은 극히 적어 복사본으로 대체하고 있다. 조선 전기 각종 문집이나 불경등 인쇄물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재단의 서지박물관이나 개인 컬렉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 전적의 가격이 매년 높아지고 구입할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직지의 영인본마저 조국의 후세들에게 전할 수 없는 지금,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우수한 민족임을 내 세울 수 있을까. 외교부와 문화재청이 적극 나서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여 한국민의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재준 limlee9@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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