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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 ||
청주가 고향인 필자는 어린 시절 초정약수터 인근에 있는 비상 국민학교를 다녔다. 봄철 소풍은 항상 인근 구녀산성으로 갔다. 지금은 산성 밑까지 승용차가 닿지만 당시에는 초정약수터에서 산성을 올라가야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구녀성에 대한 흥미로움 때문인지 험준하게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구녀산성 축성설화는 슬픈 얘기였다. 옛날에 딸 9명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딸들과 외동아들이 매일 싸우는 바람에 내기를 걸었다. 아들은 소를 몰고 한양을 다녀오고 딸은 성을 쌓는 것이었다. 이중 패배하는 편의 목을 자른다는 것이었다.
딸 아홉은 힘이 장사여서 큰 돌을 움직여 성을 쌓기 시작했다. 아들은 소를 몰고 한양 길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딸들은 성을 다 쌓을 수 있었다. 성문위에 돌 하나만을 얹어 놓으면 게임은 끝났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을 형편이 되자 큰 솥에 팥죽을 쑤어 딸들에게 주며 먹도록 했다. ‘이제 성돌 만 얹어 놓으면 너희들이 이긴 것이니 죽을 먹고 마무리를 해라’ 딸들은 어머니의 격려에 안심하고 뜨거운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양으로 떠났던 아들이 소를 몰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들이 이겼으므로 딸 아홉 명은 목이 잘리고 말았다.
전국에 산재한 고대성에는 이 같은 남매축성설화가 있다. 그 가운데는 아들선호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구녀성은 이름에 빗대어 딸 아홉 명이 등장하는 얘기로 만든 것이다. 얼마나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인가. 구녀성은 ‘구려성(句麗城·고구려성)의 음운이화로 성안에서는 고구려식 축성 방식이 완연하다.
청주는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패하던 곳이다. 곳곳에 삼국시대 쟁패의 역사 흔적이 많다. 부모산은 백제 ‘아양(부모)’ 즉 모산성의 고지이다. 판축과 석성으로 구축 된 큰 성으로 성안에서는 백제 왕도에서 흔히 나오는 연화문 와당까지 출토되었다.
필자는 부모산 주변이 청주 역사의 원류로 생각하여 여러 차례 답사했다. 부모산 아래 경작지에서는 이미 초기 철기시대 흑도등이 출토된 적이 있었다. 필자는 부모산 일대가 마한 54개국의 하나였던 ‘애양국’의 고지로 본다.
이 유적은 신봉동 고분군으로 연계되고 훗날 백제는 미호천에서 우암산으로 올라가 상당을 구축했다. 우암산에는 내외성을 갖춘 성지가 있으며 많은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
더욱 재미있는 곳은 사적으로 지정된 상당산성이다. 상당산성은 조선 숙종때 대대적으로 보축이 이뤄졌지만 본래는 백제성이었다. 한때는 고구려가 진주했으며 통일신라 직후에는 신라 왕경사람들이 이주하여 살았던 곳이다.
신문왕 5년 685AD 봄 신라 사탁부 귀족들은 서라벌에서 마차를 타고 상당산성으로 와 관부를 만들고 살았다. 그것이 서원소경의 초기 역사다.
청주는 흥미로운 역사의 주 무대다. 미호강은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터전이었다. 미호강변을 답사해보면 수많은 구석기 유물이 뒹굴고 있다. 강변에서 사냥을 하고 산 선사인들의 흔적이다. 미호강은 강내를 거쳐 세종시로 연결된다. 앞으로 청주시가 이 강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운명이 달라진다. 이 곳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관통하는 마인강 처럼 개발하면 어떨까.
청주가 재미없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청주처럼 역사적인 꿀잼 소재가 많은 곳도 드물다.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청주의 관문 플라타너스 숲이 언제부터인가 쓰레기 소각장이 설치되어 청정한 이미지를 잃었다. 서울 명사들도 가을이면 한번 오고 싶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훌륭한 역사 문화자원을 가진 것은 청주 시민들의 복이다. 미호강, 무심천은 미래의 무한한 수변관광자원이다. 청주를 재창조하여 감동을 주는 도시로 만들었으면 한다.
이재준 imlee9@hanmail.net
